
혼자 노는 아이 기춘이 아저씨네 할아버지 산소 밑에 덩그라니 꽃무더기 피었네요 그 큰 나무에 벚꽃 만발하고 흐드러지다 못해 산더미처럼 눈사태 만난 듯이 온 마을을 뒤덮고도 남을 만한 이 큰 나무 아랫 마을 마을은 진달래, 조팝꽃, 벚꽃으로 휩싸이고 고즈넉이 소록소록 잠들었네요. 벚나무 아래에서 언제나처럼 누리는 심심하게 혼자 놀지요 아무도 봐 주지 않는 꽃들하고 나무하고 뾰족뾰족 돋아나는 이름모를 풀들하고 졸졸졸 골짜기 개울물하고 동무해서 혼자 놀지요 아무도 이 마을엔 찾아오지 않고 유치원도 없고 아니 아이들은 저 혼자 뿐인 쥐죽은 듯 고요하고 쓸쓸한 이 마을 벚나무 아래에서 오늘도 누리는 혼자 놀지요. 90.4.18
아마도 쇼조는 자기 삶에서 생애에 한 번 만나는 '큰일 하나'가 아시오 구리 광산 광독 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그래서 이 문제에서 도망쳐 버리면 반드시 후회하겠구나, 생각한 것이다. 쇼조는 진정한 의미로 아시오 광독 문제를 만난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평생에 자기 존재의 의미 자체를 따져 묻는 문제와 반드시 맞닥뜨린다. 그 질문과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느낌을 어찌할 수 없다. 이른바 마쓰카타 디플레 정책으로, 민간이 불행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그런 때에 증액이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쇼조는 생각했다. 의원은 자기 급료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지녔으니 그 권리 행사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보다 못해 현민들이 올리라고 한다 해도 가볍게 늘리지 않는 것이 의원으로서 지..
출판사에서 편집자의 존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전에는 편집자와 작가 사이에 강하고 깊은 신뢰 관계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신뢰가 전혀 없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희박해진 것 같습니다. 편집자는 그 책의 최초 독자이기에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는 프로의 눈길을 기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 출판사 편집자들은 작품에 표현된 작가의 내면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팔릴 만한 주제인지 아닌지, 판매에만 치중한 기획과 디자인을 중시하며 심지어는 회사에서 정해진 기획을 담당하는 것만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느 작가가 편집자에게 자신의 신작 그림책을 보여 주고 의견을 물었더니, 그 편집자는 작품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좋아요. 기획회..
넘어야 할 산을 바라보고 있을 때가 가장 두렵고 생각이 많지 막상 떠나 산길로 들어서 한참 걷다보면 걸을만해. 길로 들어서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사건이란 사건은 다 일어나고 무서운 일은 거기에 다 있고 못된 인간은 거기에 다 모여 있을 거란 생각에 밤잠을 못 이루지. 그게 산이 아니라 삶, 인생이라고 할 때는 더 심각해져. 곧바로 일어날 일만 생각하나?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 몇 달 뒤, 몇 년 뒤 심지어 인생을 마무리하는 죽음의 순간까지 내다보며 갖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보면 불안을 넘어 공포가 생기고 제대로 가보지도 않은 인생길 앞에 주저앉아 머리와 입만 놀려. 머리로는 팔십, 구십을 살고 백 살도 살아보고 입으로는 많은 걸 안다고 떠벌려. 몸은 여기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