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의 흔적을 느끼게 해 주는 오래된 책방만큼 오랜 세월을 지켜 온 커피집도 많은 진보초. 여행을 떠날 때 챙긴 책 한 권을 읽을 요량으로 커피집을 찾다가 메이지 대학 뒤편 골목에 있는 작은 커피집 카페 드 프리마베라 (カフェ・デ・プリマベーラ)에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치형 높은 천장을 울리는 클래식과 고풍스러운 가구와 테이블마다 놓여 있는 작은 꽃병들이 가게를 지키는 주인장을 닮아 정갈한 느낌을 준다. 아직은 더위가 가시지 않은 시월의 도쿄에서 읽고 싶던 책을 읽으며 톡톡한 시간을 보냈다. 2016.10

번잡한 신주쿠의 복판을 지나 요요기 역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커피전문점 톰(珈琲専門店 TOM)을 만날 수 있다. 1층 카운터석에 앉아 사이폰에서 보글보글 물이 끓어오르며 커피가 추출되는 장면을 보면서 눈도 귀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2층으로 올라가면 동행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신문을 읽거나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로 작은 커피집이 빼곡하다. 지난한 일상의 틈을 쪼개 여유를 누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넉넉함을 함께 느낀다. 2017.6

쇼와 43년 (1968년)에 문을 연 진보초의 커피 에리카(珈琲エリカ).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 에 나온 동명의 커피집과 자매점이기도 하다. 칸다에 있던 곳은 오빠가, 진보초는 여동생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오빠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칸다의 에리카는 문을 닫게 되었고 진보초의 에리카도 지난해 3월 29일 문을 닫았다. 오랜 시간 동경의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다방들이 속속 폐점의 길을 걷고 있다. 시간이란 이렇게 속절없이 흐른다. 에리카 부근을 휘감고 흐르는 칸다 강처럼. 2017.3

중앙선 무사시사카이 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정겨운 골목들을 지나면 개업 40주년을 맞이한 커피관 쿠스노키 珈琲館 くすの樹 (Cafe Kusunoki)가 있다. 쇼와 시대(昭和時代)의 건축 양식이 매력적인 곳,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삐그덕거리던 나무바닥 소리마저 정감이 밀려 오는 곳이었다. 2018년 벚꽃이 한창이던 날 도쿄 서쪽에 있는 쿠스노키 커피점에 들러 크림도 빵도 보드라운 후르츠산도를 곁들여 쌉쌀한 커피를 마시고 동네를 산책했다. 조용한 동네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정답던 좋은 봄날이었다. 2018.3 +) 2019년 4월 15일 폐점했다는 아쉬운 소식을 들었다. 동경의 다방 (東京の喫茶店) 시간의 냄새가 묻어나는 동경의 오랜 다방(喫茶店)들을 쏘다니며 남긴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