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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편집자의 존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전에는 편집자와 작가 사이에 강하고 깊은 신뢰 관계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신뢰가 전혀 없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희박해진 것 같습니다. 편집자는 그 책의 최초 독자이기에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는 프로의 눈길을 기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 출판사 편집자들은 작품에 표현된 작가의 내면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팔릴 만한 주제인지 아닌지, 판매에만 치중한 기획과 디자인을 중시하며 심지어는 회사에서 정해진 기획을 담당하는 것만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느 작가가 편집자에게 자신의 신작 그림책을 보여 주고 의견을 물었더니, 그 편집자는 작품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좋아요. 기획회의에서 검토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작가는 매우 불쾌해져서 “자신의 의견이 없다면, 가지고 가지 않아도 돼요. 다른 출판사에 보여 줄 게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작가는 저에게 “요즘 편집자는 거의 대부분이 저런 태도라 질린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저는 그 작가에게 “편집자라기보다 회사원이니까 회사의 의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고 말했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그 작가가 젊은 시절에 만든 신작에 감동한 편집자가 작품을 출간하기 위해 열심히 주위를 설득해서 스테디셀러 걸작 그림책이 탄생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편집자의 이러한 태도는 좋은 그림책이 나오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노파심마저 생깁니다.
어느 편집자는 ‘출판 기획의 기준은 팔릴지 안 팔릴지, 재미있는지 없는지의 두 가지였다가 최근에 출판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가 보태어졌다’고 말하지만 어린이책의 편집자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시적인 엔터테인먼트 책이라면 재미있고 잘 팔리면 괜찮을 수 있겠지만, 어린이책은 마음에 남는 엔터테인먼트이자 미래를 위해 아이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가와 편집자 모두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좋은 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령 출판사에 근무하는 회사원일지라도, 작가에 대해서는 단순한 편집부원이 아닌, 프로 편집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더불어 저자와 편집과 영업, 판매, 유통, 그리고 독자가 잘 맞물려 어린이책 시장이 회생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요?
⟪세계의 어린이책과 작가들⟫ 55-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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